태터데스크 관리자

도움말
닫기
적용하기   첫페이지 만들기

태터데스크 메시지

저장하였습니다.

공랭과의 토론  :  대인관계 or 소인관계


 살아가는데 있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……. 이런 말들 흔히들 자기 인생에는 좀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일까? 아니면 지금까지라는 말일까? 지금의 내 모습에 비추어 보면 수많은 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아직 짧은 삶? 이랄까?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. 삶을 애매하게 살았다 하기 보다는 타인도 인정하기에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다.

  얼마 전 김 교수가 친한 후배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. 그 후배는 여러 타인에 대한 일종의 벽? 이랄까? 아니면 거리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있다. 그로인해 첫 인상은 차갑게 느껴졌고 쫌 알고 지내는 지금도 알고 지내기는 하지만 친하다 할 수 없다. 빨리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게 사람이라지만 잠시나마 내가 받은 느낌을 토로하자면 자기 자신을 얼음에 가두고 남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이라 말할 수 있겠다. 나쁘기 보다는 아쉬울 다름이다.



  그 사람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?


우리 즉 나와 김 교수는 그가 누군지 않다. 하지만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른다. 아주 친한 사람 사이라도 100% 알 수는 없는 법 하지만 대게 안면을 트고 술자리를 몇 번 가지다 보면 대충이나마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또는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. 하지만 이 후배의 경우에서는 그 사람에 대하여 얻는 정보 및 판단의 비율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낮았다.


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친해수 있는 정보의 획득 수준이 낮은 이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? 그 사람이 마음을 닫고 사는 것일까? 아니면 나와 김 교수가 접근하는 기준과 방식이 다른 것일까? 얼마 전까지의 판단에서는 바로 전자였다. 그러나 김 교수의 글을 읽게 된 이후로 좀 다른 방식의 접근방법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. 대인관계를 넓히거나 유지하는데 는 각자 다른 방식과 기준을 세운다. 좁고 깊은 대인관계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, 넓고 얕은 대인관계를 원하는 사람도 혹은 좁고 얕은 대인관계를 설정하는 사람도 있기도 하다. 때문에 그 사람의 대인관계 설정에 있어서 나쁘다 좋다 평가하기도 어려우며 그에 대한 타인의 접근도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.


난 그 사람의 과거를 모른다. 성장 후 가치관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나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고, 여러 가지 주위 상황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도 있으며, 어쩌면 지금과 같이 판단하고 바라보는 시선이 그 사람을 그렇게 되도록 하는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. 김 교수의 의견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본다.

이올린에 북마크하기(0) 이올린에 추천하기(0)
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
Creative Commons License
Posted by 비회원